크레미궁

장르: C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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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하늘에서 끊임없이 물방울이 흘러 몸을 적십니다.
마치 누군가가 당신을 끌어안고 통곡하듯이.
“지휘자, 헤스터 크롬웰.”
“명령이다. 당장 유물을 내려놓고 복귀하도록.”
당신의 손에서는 투명한 보석으로 된 상자가 들려있습니다.
당신은 기억할 겁니다, 이것을 훔쳐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해야했던가요.
그리고 이 행동이 얼마나 당신답지 않은 일이었는지도요.
헤스터:(하지만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하겠지.)
대형 크리쳐를 토벌해서 얻은 유물, 대상 하나의 외상과 내상을 온전히 치료할 수 있는 희귀 아이템.
당신과 당신의 파트너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혈투 끝에 얻은 이 물건을, 당신은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훔쳤습니다.
그 이유는…
미르딘:헤스터....
분명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또 병동을 탈출했는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낯짝으로 비틀거리면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저 바보 때문입니다.
미르딘:거기서 뭐하는거야, 헤스터.
어서 돌아와..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겁니까.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관리할 줄 모르는 짜증나기 짝이 없는 최악의 파트너같으니.
헤스터:...(지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직감을 한다.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이제부터 일어나는 일은, 전부 너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그저 내 선택으로, 내 독단으로 벌이는 일이니까.
미르딘:...(여느 때보다 창백하게 질린 낯으로, 답지않은 딱딱한 시선으로 당신을 응시한다.) 헛소리.
너와 나는 페어야.
헤스터:(자신을 막으려 달려드는 대원들을 중력장에 가두어 짓누른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시선이 향하는 쪽은 자신의 파트너.)
무기와 천이 짓이겨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숨을 삼킵니다.
헤스터:(순순히 따라주지 않을 것까지도 예상하고 있었으니, 당황하지도 않았다. 주위를 짓누르는 무거운 압력을 네 쪽으로 집중시켰다.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미르딘:...그렇게 하지마.
... ...
근력
기준치: 50/25/10
굴림: 53
판정결과: 실패
(행운 3 소비합니다)
부드럽게 몸을 짓누르는 중력.
이 땅을 딛고 있는 이라면 만고불변의 법칙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페어는 이를 악물고 그 힘을 거슬러 일어서려 합니다.
뼈가 비틀리고, 근육이 짓이겨지며 입가에서 선혈이 흐릅니다.
이대로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 형형한 눈빛이 당신을 향합니다.
헤스터:(흠칫, 동공이 흔들린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표정에 동요가 일지만...)
미르딘:내 몸이 어떻게 되던, 내 삶이 어떻게 되던 그것이야말로 너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
(내장이 뒤틀리는 감각에 인상을 찌푸리지만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는다. 속이 토할 것처럼 울렁거리는 이유는 고통보다 이 상황에 동요하는 저 물렁한 이의 눈빛 때문이겠지.)
지금까지 네가 소중하게 키워온 캐리어를 던져버리면서까지 투자할 가치가 있는 일은.. .(이를 악물고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뜬다) ..아니지.
헤스터:(끓어오르는 것인지, 먹먹해지는 것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인다. 그래, 언제나 나는 네 앞에선...) 왜 나에게 애원하진 않아?
이것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거잖아.
미르딘:진심이야? 네 지금 모습을 봐.
헤스터:왜 언제나 나만...! (네 삶에 간절해야 해? 그 말을 뱉을 수는 없었다. 그 감정이 얼마나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지 알고 있었기에.)
(듣고 싶지 않아. 말 대신 행동으로 표현했다. 느슨해졌던 압력이 한층 강해진다.)
미르딘:... ...(그 뒤의 어렴풋하게 이어질 말을 알 것도 같았다. 그 다정함에 안주한 삶은 따뜻하고 행복했으나 그 안온함에 취해 제가 놓친 것이 이렇게 큰 댓가로 돌아올 줄 알았더라면.)
(제 삶보다 소중한 것을 잃게 될 줄 알았더라면,) 나는....!
이런 걸 바란 적이 없어.
나도 살고 싶었어. 네 곁에서 살아가고 싶었어.
하지만 네가 쌓아온 것들을 무너뜨리고 그 위에 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단 말이야...
묵직한 중력에 미르딘의 몸이 짓눌립니다. 이 정도라면 그도 일어날 수 없겠죠.
미르딘:... ..(손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온 몸의 구멍에서 피를 쏟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일어나려고 시도는 해보고 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듯 하다)
헤스터:(천천히 미르딘의 쪽으로 다가간다. 광활한 공간 속에서 자박자박, 가벼운 발소리만이 울리고...)
(지척까지 다가가고 나서야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다. 바닥에 짓눌린 미르딘을 매서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옷깃을 붙잡아 끌어올린다.)
(과중력에 의해 상자의 자물쇠는 이미 파괴된 채. 안쪽의 투명한 보석을 반대쪽 손에 쥐고, 너를 밀어 넘어뜨렸다. 간단하게 그 필사적인 저항을 압살하고, 네 가슴 쪽에 그 보석을 가져다 댄 채, 손을 올린다.)
미르딘:...(생기를 잃은 새카만 눈이 당신을 차갑게 응시한다.)
헤스터:...내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포기할 지. 그것도 내가 정해. 주제넘게 나서지 마.
미르딘:(감정을 제어할 수 없는 순간은 처음이었다. 애정의 깊이만큼 증오와 절망이 덧씌워지는 순간의 감각이란 차갑고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이 저주처럼 몸에 새겨진다.)
당신의 손에 들린 보석의 빛은 찬란하고 따뜻합니다.
눈이 멀정도로 눈부신 빛은 주위의 모든 것과 동떨어져서 쓸쓸하게 까지 느껴집니다.
그 빛이 점차 넓게 퍼지더니, 미르딘의 몸을 덮습니다.
미르딘:우스워, 무엇을 잃었는지도 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
빛 때문에 불분명한 시야 속에서도 그의 목소리에 기적과 같은 활기가 담긴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비통하고 절박했다는 것도.
미르딘:나를 살리고 싶었어?
너를 상처준 나에게 복수하고 싶었어?
그래서 소중한 것을 잃고 증오에 미쳐가면서 살아가길 바랬어?
뚝,
당신과 ‘파트너’를 잇던 보이지 않는 끈이 끊어지는 감각이 생생하게 듭니다.
이것으로 진정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돌아가겠죠.
그런데 왜 그는 저런 괴로운 표정을 하는걸까요.
헤스터:(그래, 이 편이 낫다. 자신은 이제 쫓기는 신세가 될테니. 남은 쪽은 어떻게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미르딘:..이 순간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못하는 내가 끔찍하기 짝이 없어.
... ...살고 싶었어. (자조적으로 웃는다. 생에 대한 집착을 이딴 최악의 방법으로 자각하게 되다니.) 하지만 나는 이런 방식은 바라지 않았어.
너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살고 싶은 건 아니었단 말이야!
끝까지 바보같은 녀석.
그래도 저 선명한 감정이 담긴 눈을 보니...
생에 대한 의지는 확실히 주고 떠날 수 있을 것 같네요. 만족스러운가요?
헤스터:(만족스러운가? 분명히 원하는 대로 되었는데도, 무슨 일인지 마음 한 켠은 비에 축 젖은 것처럼 무겁다. 나는 대체 무얼 하고 싶던걸까. 그 해답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자신은 시간이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거라는 것.)
너는 정말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데엔 뭐가 있어.
미르딘:너보다는 아니지.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서늘하게 웃는다.)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을 무너뜨렸어.
절대 용서하지않아, 헤스터 크롬웰.
헤스터:(모든 일이 끝나서인가, 그 말에도 어떤 동요가 일지 않았다.)
(중력은 세상을 유지하는, 물체를 공간에 잡아두는 힘. 그 극에 달한다면 공간에서 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하거나, 시간을 돌리는 것까지도 가능한다고 한다. 아무튼, 장면을 전환하는 데에는 이만한 것도 없다는 것.)
그렇습니다, 당신의 능력이면 이 곳에서 도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죠.
헤스터:(공간이 비틀리고, 공간과 공간의 틈이 생긴다. 그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 흉흉한 낯을 한 네 쪽을 돌아보았다.)
다신 보지 않는 거로 하지.
잘 있어, 미르딘 엠리스.
미르딘:아니, 우리는 곧 만나게 될거야.
이대로 끝나는 것은 내가 용납하지 않으니까.
비통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당신은 중력의 틈으로 천천히 사라집니다.
눈 앞이 새하얗게 물들며 몸이 붕 뜨고 공간을 가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두고 떠난 당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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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하늘, 그리고 하늘을 담은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끝없이 푸름,
하늘이 어딘지, 또 바다와의 경계가 어딘지. 모호하고 아름다운 장소.
눈을 돌리면 하얀색 대리석과 자연의 녹음이 눈을 간지럽히는 곳.
당신은 지금 그리스에 있습니다.
미르딘의 병을 유물로 치료한 뒤 그대로 도주했던 당신은…
길고 짧은 추격전 끝에 끝내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능력자 대상으로 마련된 수용소에 며칠 간 투옥된 채 지내다가 본부의 명령이라는 말만 듣고 그리스까지 끌려오게 되었죠.
무슨 일인건지 물어봐도 명령을 위반한 전적이 있는 당신에게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헤스터:(그냥 시원하게 파면하든 아예 가두든 하면 될 일을 왜 이렇게 질질 끌지?)
(하지만 자신의 신세는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기에,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고분고분하게 따라왔다.)
..가이딩을 며칠 간 받지않았더니 아무리 이능력 사용을 자제했다고 해도 눈 앞이 약간 어지럽네요.
푹신한 차 시트에 몸을 기댄 채 푸른색 하늘을 바라보며 이동하고 있으면
차는 어느새 부드럽게 코너를 돌아 높다랗고 커다란 문 안으로 들어가 마련된 주차장으로 이동합니다.
헤스터가 본래 소속되어있었던 뉴욕지부와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다만 위로 높았던 헤스터의 지부에 비하면 낮은 돔 형태의 건물에, 그리스답다고 해야할지 흰 건축물입니다.
두 개의 대리석 기둥을 세우고 세모난 조각을 올린, 신전의 문 같은 입구에…
확실히 다른 점은 지휘자와 안내자로 보이는 이들이 없고, 쥐어짜인 것 같아 보이는 흰 가운의 연구원과 의사들만이 좀비처럼 돌아다니고 있다는 정도군요.
뭐지? 인력 부족인가?
헤스터:(큰 일이라도 있던 모양이군...)
차에서 내리면 지나가던 좀비.. 아니, 연구원이 약식으로 경례하고, 헤스터는 다른 요원들에게 연행되다시피 지부 건물로 들어섭니다.
흰 대리석 바닥은 깨끗하지만, 그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은 분주하고, 생각에 잠겨있거나, 피곤해 보입니다.
어수선하네요.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벽에 커다란 안내판이 붙어있습니다.
헤스터:(읽어본다...뭐라고 적혀 있지?)
지상층은 1층, 2층, 3층, 4층으로 1층은 로비와 안내데스크, 지부장실, 소규모 의무실, 브리핑룸과 카페테리아 등으로 이뤄져 있고 2층은 운동실과 휴게실 3층은 대원들의 숙소와 체육관으로 통하는 육고, 4층은 헬기와 구조선 필드로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지하 1층은 식당과 편의시설, 지하 2층은 연구실로 사용 중인 모양으로 건물 뒤편에 드넓은 연병장, 딸린 건물로는 부대 병원과 체육관이 있습니다.
헤스터:(뉴욕 지부만큼의 규모는 아니지만 있을 건 다 있군...)
2 (1 와본 적 있다.. 2 없다)
(아테네 지부엔 완전히 처음이라 생소하지만 생소한 게 무슨 문제지? 어차피 여기에서 자신이 선택하여 어딘가에 있을 순 없을텐데. 신경 끄기로 한다...)
새하얀 대리석 복도를 걷고 있으면 창문 너머로 나무들이 보입니다.
잎사귀가 물방울을 머금은 것을 보니 곧 여름이겠군요.
햇살을 맞으며 걷다보면 눈 앞에 커다란 문이 보입니다.
당신을 데려온 사람들은 문 옆에 비켜섭니다. 아무래도 혼자 들어가야하나 보군요.
헤스터:(화창한 풍경에도 이능력 페널티로 인한 두통 때문에 화사하다고 느끼진 못하고 있다.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일행을 따라가다...)
...
(옅은 한숨을 뱉고 문을 열어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깔끔하고 단정한 사무실 내부가 보입니다.
넓게 난 창문에서 아이보리색 햇볕이 들어오고 산뜻한 아쿠아향이 나는 것이 꽤 안온한 풍경의 지부장실이지만...
서류가 산처럼 쌓여있는 책상을 보니 마냥 안온하진 못한 모양이군요.
아테네 지부장:안녕하세요, 헤스터 크롬웰씨.
아테네 지부장인 루키오스 아나델이에요. (생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온다)
젊고 자상해보이는 인상의 청년입니다.
다만 눈 밑이 거뭇해보이는 걸 보니...많이 바쁜가보네요.
헤스터:안녕하세요, 저는...(뉴욕 지부 소속, 그런 말을 하려다 멈춘다. 여전히 뉴욕 지부 소속은 아닐지도 모르겠지.)
아테네 지부장:갑작스러우셨을텐데 와주어서 고마워요.
헤스터:...네, 헤스터 크롬웰입니다.
아테네 지부장:(눈을 도르륵 굴리고 손님용 소파에 당신을 안내한다) 일단 공개적인 문서에는 뉴욕지부에서 당신을 보낸 것으로 적혀있으니 그렇게 소개하시면 될 것 같네요.
차는 좋아하시나요? 아니면 커피파?
헤스터:아직은 그렇게 되어 있군요. (의외였지만 굳이 의문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자신이 어떻게 되는가, 솔직히 말하면 그 주제는 흥미 밖이었으니.)
둘 다 됐습니다. 본론부터 말씀해주시죠.
아테네 지부장:공식적으로는 당신이 일으킨 사건은 목격자와 간부진을 제외하면 알지 못하도록 처리되었으니까요. (개의치않고 홍차를 당신 앞에 소리없이 내려놓는다.)
휴가로 처리되었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일단 지금까지는요.
(그리고 파일 하나를 내민다.) 며칠 전, 저희 지부에서 이런 서류를 뉴욕 지부에 보냈어요.
헤스터:(서류를 쭉 읽어내려간다. 다 읽은 뒤에는 탁, 소리가 나게 덮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상황은 이해했습니다.
명분이 어떻게 되었든 전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겠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저는 별 도움이 안될텐데요.
(전투 능력 인원이 사실상 제로. 그렇다면 가이딩을 할 만한 사람도 없다는 거겠지. 지금 상태로는 자신도 큰 전력이 되지 못한다. 만약 뭐라도 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무력하게 잡히지 않았겠지.)
아테네 지부장:예, 가이딩을 며칠 동안 받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부상도 최근에서야 회복하셨다고 들었고요.
아테네 지부로서도 당신의 파견을 요청하지는 않았습니다. 원래는 안내자 한 명만 필요했거든요.
하지만 오기로 했던 그 안내자가 당신을 지목하더군요.
..유감스럽게도, 혹은 운이 좋게도.
뉴욕 지부에서는 이 임무가 특히 위험도가 높다는 것 그리고 당신의 지금까지의 실적을 높게 평가해 이번 임무에서 성과를 내면 지휘자로 복귀를 진지하게 고려하겠다고 했습니다.
아까운 인재를 감옥에서 썩힐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거죠.
헤스터:(메마른 웃음이 흘러나왔다. 기가 차서. 법칙은 법칙대로 진행하는 거지, 무슨 예외가 필요하다고.) 제 쪽에서 거절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제게 선택권은 없는 모양이죠.
아테네 지부장:안타깝지만 그렇군요.
헤스터:...그렇다면 시간 끌 것 없이 빨리 해치우도록 하겠습니다. (파일을 챙긴다.)
아테네 지부장:당신이 받을 징계는 무보수로 이 사건을 해결하는 일인 셈이죠.
...그 안내자에 대해 물어보지는 않으시는군요.
당신과 새롭게 파트너가 될 사람인데, 신경쓰이지 않으십니까?
헤스터:...물어보지 않아도 누군지는 뻔하니까요.
아테네 지부장:좋습니다. (고개를 끄덕인다.) 혹 신경쓰인다면 파일 안에 그 안내자의 프로필이 있으니 읽어보시길.
사건에 대해서 궁금한 점은 없나요?
(차를 홀짝이며 눈을 천천히 굴린다.)
헤스터:(들어올 때 봤던 분주한 풍경은 이 능력자들이 치료를 받는 장면이리라. 자신이 할 일은 크레타 섬에 진입하여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겠고...그 외 사소한 수습 등등.)
(일단 안내자 프로필이나 읽어본다...뻔하지만.)
서류를 보면 익숙한 얼굴이 보입니다.
당신이 예상한 그대로군요.
헤스터:됐습니다. 일단 행동부터 해 보죠.
아테네 지부장:그리고 미안하지만, 위치추적기를 부착해주셔야겠습니다. 징계를 받고 계시는 중이니까요.
(소형 위치추적기 버튼을 당신의 셔츠깃에 붙이고 자신의 지문을 등록해 잠근다.)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요, 오늘 낮에 엠리스씨가 공항해 온다고 합니다.
그 분을 마중하러 가신 후, 이 곳에 돌아오면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도록 하죠. (씩 웃는다)
헤스터:(별로 저항하지도 않았다. 머리에 박아넣는게 아니라 다행인가...)
...마중까지 나가야 하나요? 피차 좋을 것도 없을텐데.
아테네 지부장:하지만 당신은 가이딩이 급하지 않습니까?
헤스터:... ...
아테네 지부장:페어를 맺지않더라도 안내자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휘자는 조금 안정이 되죠.
헤스터:(지끈...두통이 한층 깊어지는 것 같다.)
아테네 지부장:(그런 당신의 모습을 보고 생긋 웃는다) ..가보세요. 그런 일을 벌이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사람이잖아요. 언제까지고 냉전상태로 있는 건 힘들지 않겠어요?
적어도 엠리스씨는 당신을 보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해서 인사를 마치고 복도로 나와, 공항으로 미르딘을 마중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헤스터:.....(무력하다, 정말. 그 녀석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새파랗던 하늘이 벌써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헤스터:(다신 보지 말자고 호언장담한 주제에, 이렇게 되다니.)
당신의 배경도 있겠지만..어지간히 집요하게 당신을 데려오라고 요구한 모양이군요.
당신의 '전' 파트너가요.
헤스터:(빌린 차량의 운전석에 앉아 창문의 유리에 관자놀이를 기대었다. 차가운 기운 덕분에 두통이 조금이나마 가라앉는 것 같았다.)
다 끝났는데, 뭘 또 하겠다고.
당신은 현재 몇 주간 가이드와의 접촉을 하지 못한 상태죠.
덕분에 갈증, 굶주림… 뱃속에서 들끓는 것들이 슬슬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완전히 끊은 인연과 다르게 지휘자로서의 본능은 불쾌하게도, 멋대로 그와의 접촉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공항에 도착하면,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풍경이 보입니다.
코드 레드가 아무리 극비라지만, 큰 사건이 일어난 것 치고 활기 넘치네요...
헤스터:(...끔찍해. 결국 간절히 바라는 쪽은 나라니.)
(마음과는 다르게 머리는 한층 차분해진다. 페널티가 무색하게도 무사히 도착하고 만다.)
(관광객들의 틈새를 지나, 게이트에 도착한다.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한 눈에 알아볼 자신은 있었다...)
용케 사고를 내지않고 공항의 로비로 향합니다.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모여있는 곳에서...
시선이 빨려들듯이 확실히 보이는 인영.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이 못 알아볼리가 없죠.
그리고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나봅니다.
미르딘:...
눈이 마주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의 뱃속에서 들끓던 지휘자로서의 본능이 그와 계약을 맺고 드러난 피부에 입술을 부비고 입을 맞추라 촉구합니다.
..심호흡을 하고 가라앉혀봅시다.
헤스터:...(눈을 찌푸린다. 가까스로 그 쪽으로 다가가려는 의지를 참아내고...)
당신이 바라던, 바라지않던 그는 정갈한 걸음걸이로 다가옵니다.
여전히 피부는 창백하지만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건강해보입니다.
미르딘:...(다가와 당신을 쭉 훑어보더니 눈을 접어 웃는다) 오랜만이야, 헤스터. 마지막에 그렇게 말하고 가더니 마중까지 나와줬네.
헤스터:(적의가 가득한 눈으로 올려다본다. 노려본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만족해?
미르딘:(그 시선에 개의치않는다는 듯 여상스레 웃는다.) 고작 이정도로?
나는 아무것도 되찾지 못했는데 무슨 말을 하는건지.
(제 머리를 태평한 동작으로 쓸어넘기고) 그런 낯을 하는 걸 보니 너는 꽤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나보네.
갑자기 이 곳에 불려오니 불편한가봐.
헤스터:(네가 되찾을 게 뭐가 있는데? 필요한 건 이미 다 손에 있을텐데.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더 말해봤자 자신에게 좋을 건 없을 것 같으니.) 그래, 불편하기 짝이 없네.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는다. 조금이나마 나아졌다지만, 다른 갈망 때문에 마음은 오히려 폭풍 속 나룻배와 같은 상태.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저 녀석에게 계약을 맺어 달라고 하는 건, 죽는 것보다 더 싫다...)
쓸데 없는 소리는 그 정도로 해 두고, 돌아가지.
미르딘:아...그래도 되나? 네 식의 배려야 익히 알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너는 복귀보다 다른 걸 우선해야할 것 같지 않니?
몇 주 동안 가이딩을 받지 못한 것 아니었어? (눈썹 한 쪽을 살풋 찌푸리는 것이 사정을 모를 이가 본다면 진정 당신을 염려하는 것으로 보일만 했다. 가까이 있는 당신에게는 차갑게 식은 눈이 선명했지만.)
버티기 참 힘들텐데.. ..(당신의 긍지높은 성격을 알면서 부러 이죽거리는 것이 뻔했다.)
뭐, 상관없는 사람이 주제넘게 참견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 필요하면 헤스터가 말해줄거라 믿어. (입꼬리를 비틀고 웃으며) 운전 정도야 할게. 차 키 주겠니?
헤스터:(익숙하진 않았다. 미르딘은 언제나 자신의 아집에 맞춰주었기에. 그렇다면 저번 일 때문에 아직까지 이렇게나 화가 나 있는 걸까.)
(사실 여전히 이해는 가지 않는다. 왜 네가 화를 내지? 모든 것은 내 선택이었는데. 네가 질 책임은 어떤 것도 없었는데. 물론, 이런 냉정한 사고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목끝까지 차오른 갈증 때문에.)
(마른 침을 삼킨다.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안됐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정이 안 좋진 않아서.
(차 키를 넘겨주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지만...지금의 자신이라면 무슨 사고를 낼지 모른다. 떨리는 손끝을 애써 숨기고 키를 넘겨준다. 그리고 별 말 없이 출구로 향했다.)
미르딘:그럴리가, 상태가 좋다면 다행인 일이지. (차 키를 넘겨받으면서 떨리는 손 끝을 일부러인지 무의식인지 대놓고 응시한다.)
(일부러 당신의 손을 한 번 쥐고, 키를 받아간다.) 잘 부탁해.
손에 익숙한 체온이 부드럽게 휘감깁니다.
그 체온은 몸에 간지럽게 퍼져나가고, 조금이나마 호흡을 편하게 해줍니다.
아주 미약하게 두통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집니다.
헤스터:(파도처럼 밀려오는 서늘하면서도 안정된 감각이 익숙하면서도, 너무나 낯설었다. 안돼, 이대로라면...) ... ...
그 미약한, 애를 태우는 안정은 도리어 지휘자로서의 본능을 자극합니다.
두 사람 다 파트너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미약하게 나마 가이딩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는 뻔히 이렇게 행동한거겠죠.
헤스터:(탁, 거칠게 손을 쳐낸다. 당황스러움과 분함을 가릴 여력까진 없었다.)
미르딘:네가 지독하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걸 좀 더 일찍 알았어야했는데.
(피식 웃고 짐가방을 끌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헤스터:... ...(최악. 평소라면 그렇게 말했으려나. 하지만 그럴 정신조차도 없었다. 네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길 바라보며 서둘러 이동한다...)
미르딘: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작게 중얼거리며 차를 찾은 후 짐을 뒤에 던져넣고 운전석에 탑승한다.)
(조수석 문을 예의상 열어놓는다.)
헤스터:(가까스로 조수석에 탑승한다. 괜찮은 척을 하는 게 고작이라, 그동안은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차는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공항을 빠져나갑니다.
저녁의 그리스. 노을이 벌써 뉘엿뉘엿 넘어가 붉게 물든 거리 속 사람들을 평화로워 보이는군요.
지금 당신의 상태에 비하면 누구나 평화롭겠죠.
미르딘:(힘겨워하는 것을 알면서 뻔히 묻는다.) 일단 간단한 설명은 듣고 오긴 했는데, 브리핑 해줄 건 없어?
아니면 나한테 물어볼 사항이나.
헤스터:(태연함을 가장해보나, 듣는 쪽에겐 전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그래도 절대로...) ...코드 레드. 상황은 가서 보면 알거야. 물어볼 건 없어. 운전이나 제대로 해.
미르딘:(무슨 생각인지, 이전과 다르게 굳이 참견하지 않고 운전대를 잡는다. 무슨 꿍꿍이던 당신에게 달가운 방향은 아니겠지.) 흐음, 그래.
그 후로 미르딘은 아무 말 없이 운전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갈증은 언제나 파트너를 옆에 두고 있었던 당신에게는 낯설지도 모르겠네요.
두 사람 모두에게 결코 편하지 않았을 시간이 몇 분 더 이어지고 나서야 아테네 지부 건물이 보입니다.
미르딘:도착했어.
주차장에 차를 세운 미르딘이 자기 짐을 들고 먼저 내립니다.
미르딘:..부축이 필요하니?
헤스터:(그야, 미르딘은 언제나 자신이 요구해오기도 전에 가이딩을 해 줬으니까. 금단이라는 건 이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건가, 새삼 자각한다.)
(어둑해져 남색 빛을 띠기 시작하는 하늘이 여전히 붉은 색으로 보였다. 이제 정말 한계다...)
...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 미약하게 들린다. 네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것 같기도 했다.)
미르딘:(한숨을 쉬며 다가와 팔을 뻗는다) 아무 상관없는 관계인 사람에게도 이렇게 고집을 부릴 필요가 있니?
(그리고 당신의 팔을 제 어깨에 두르고 몸을 낮춰 건물 구석으로 데리고 간다.) ...
자, 이제 정말 계약을 해야하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하니, 헤스터?
헤스터:(건물 구석에 다 들어가기도 전에, 자신의 어깨에 둘러진 네 팔을 거칠게 잡아챈다. 명백하게 이성이 흐려진 동공은 오로지 네 손을 바라보고 있었고...)
미르딘:..(당혹스러운 낯은 없다. 다만 신기한 것을 바라보는 듯 눈을 천천히 깜빡인다.) 이런 표정을 하는 헤스터를 볼 수 있을지 몰랐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니?
내가 없으면 미치겠다는 표정인데.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비웃음을 그린다.)
그런 낯을 할거면서 앞 뒤 안보고 잘도 떠났네.
헤스터:(평소라면 절대 듣고만 있지 않았을 힐난도 웅웅거리는 이명으로 들렸다.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어...) ... ...
미르딘:...
(잡힌 팔을 뿌리친다.)
(이전보다 확연히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건강해졌더니 몸도 훨씬 다루기 쉬워졌어.
(제 손을 쥐었다가 천천히 피며 당신을 무감하게 본다) ..지금 누구 손을 잡고 있는지 알아?
피아구분 못할 때 해놓고 너인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거야- 따위의 말을 듣는 건 이제 지겨워서 말이지.
자, 헤스터. 제대로 부탁해야지.
헤스터:(반면, 한계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인 쪽은 무력하게 반동을 받아 뒤로 물러난다. 그 '헤스터 크롬웰' 이 맞나, 싶을 정도로 터무니없었다.)
(꽉 쥔 손의 안쪽을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배어나온다.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었다. 몸의 균형이 무너져내린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던 각오도 갈증 앞에선 흐려지고 말고...)
미르딘:... ...
헤스터:(마지막 혼을 쥐어짜 할 수 있던 것은, 겨우 무릎으로 선 채로 네 다리를 붙잡고 겨우 서 있는 것.)
...제발...
미르딘:(그냥 가만히 있을까, 하는 최악의 생각이 들었다가 적어도 지금은 직장동료니 이정도는 괜찮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팔을 뻗어 헤스터의 어깨를 끌어안고 일으켜세웠다.)
..(인상을 살짝 찌푸린다.) 나는 네 굴욕적인 모습을 바란 게 아니야. 그저 네가 나를 제대로 인식하고 가이딩을 하길 바란거지.
다시 물어볼까, 내가 누군지 알겠어?
당신을 끌어안고 상반신이 겹치자 일순 호흡이 편해집니다.
시야가 조금 더 또렷해졌지만 갈증은 가라앉았다 다시 치솟기를 반복합니다.
헤스터:(정신이 조금이나마 돌아온다. 그제서야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깨닫고...) ... ...
미르딘:이제 좀 제대로 보이나보네.
헤스터:(짜증이 치밀었다. 더 볼 것도 없이 일부러 이러는 거겠지.) ...이런 걸 바랐던 거 아냐? 내가 밑바닥까지 처박히는 걸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냐고.
그게 아니라면, 왜 여기까지 온 건데.
미르딘:(심드렁한 낯으로 한숨을 쉰다) 정말 예상한 그대로의 말을 해서 놀랍지도 않아.
그럼 피아식별 못하는 상태로 계약했으면 편했을까.
그게 더 너를 무시하고 자존심을 진창에 처박는 행위 아니겠니.
...계약한 안내자가 없으면 어떻게 될 줄 네가 모르진 않았을텐데 이렇게 엉망으로 지낼 생각으로 그 때 떠난걸까... (눈을 가늘게 뜬다. 떠났으면 잘 지내기라도 하지.)
이제 상대 누군지 구분할 정도의 시야는 확보한 것 같으니 다시 한 번 물어볼까. 나와 계약하겠니?
뭐, 어차피 이 곳에 나 외에 멀쩡한 안내자는 없는 것 같지만.
헤스터:... ...(원망이 한껏 담긴 시선으로 노려본다. 하지만 누굴 탓하겠는가. 그는 당한 만큼 갚는 것이라 여길텐데.)
미르딘:(들었다면 당했다, 라고 생각이라도 했나? 놀랍네. 라고 반응했을 것이 뻔하다.)
왜 그렇게 나를 보니? 네가 선택한 일이었잖아.
헤스터:(짧은 순간, 판단을 마친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미르딘 엠리스는 정말이지 끔찍하게 지독한 인간이고, 이 건은 자신이 항복할 때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내걸 카드는 더 이상 없다. 두 번째로 그 충동을 겪었다간...)
(...자신이 미르딘에게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아무리 나아졌다고 해도, 폭주에 휘말리면 위험할지도 몰라...)
미르딘:(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럴 때는 손바닥 뒤집듯 어렵잖게 예상이 된다는 것이 참 유감스러웠다. 서로에게.) 네가 아니라 다른 지휘자였어도 이렇게 행동했을테니까 오해하지마.
헤스터:... ...
(다른 지휘자였다고 해도 이렇게 했을 거야. 그 말에는 표정을 찌푸린다. 이미 한계까지 몰아붙여진 정신에도 그 말은 따갑가 다가왔는지, 오히려 차분해진다.)
그래?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래, 쓸데없는 언쟁은 여기까지 해 둘까. 너는 계속 심술을 부릴 것 같고, 나로서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없으니 말이야.
계약할게. 됐지? (손을 내민다. 이젠 좀 순순히 응하라는 듯.)
미르딘:...(헛웃음을 흘린다. 다른 사람 앞에서 기어다니며 애원하는 당신의 모습은 솔직히 구역질이 날만큼 불편했으나.) .. (굳이 티 낼 이유는 없다. 이 일이 끝나면 정리할 관계.)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했을거라는 것처럼 들리네. (아까부터 순순히 계약하지 않고 객기부리던게 누구였지, 눈썹을 까닥였지만 마찬가지로 굳이 물고늘어설 이유는 없었다. 순순히 손을 내민다.)
헤스터:(숨을 크게 뱉는다. 처음 계약하던 순간보다도 더 강렬한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던가.)
(천천히, 네 손을 들어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내내 시선은 똑바로 네 눈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 다른 누구도 아닌 미르딘 엠리스와 계약하겠다고 하는 거야. 이제 만족해? 그런 항의를 하는 것처럼.)
(하지만 강한 척 하는 것도 거기까지. 안정감이 밀려오자 몸의 피로가 급격하게 해소되며 긴장이 풀린다. 무심코 고개를 숙여 네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 숨을 쉰다는 건 이런 감각이었구나.)
미묘하고 불편한 분위기 속, 미르딘이 헤스터에게 손을 내밉니다.
내밀어진 손을 잡으면, 다소 뜨거운 상태인 헤스터의 체온이 미르딘의 체온과 뭉그러져 섞이며 숨이 밭게 죄어옵니다.
파트너쉽은 정신적 교류라고들 하죠.
헤스터가 천천히 미르딘의 손바닥에 입술을 누르면, 보드라운 피부의 감촉이 입술에 닿음과 동시에 한차례 얕은 소름 같은 것이 발가락 끝에서부터 몸을 타고 정수리로 오릅니다.
‘맺어지는’ 감각.
커다란 파도처럼 몸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저도 모르게 가슴팍이 부풀고 어깨가 크게 오를 정도로 숨을 깊게 마셨다가 느리게 내쉽니다.
숨결이 닿은 손바닥으로 간질간질, 보드라운 입술에서 느른한 한숨이 떨어짐과 동시에
어떤 견고한 유대로 서로가 묶였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감지됩니다.
두 사람에게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겠군요.
미르딘:(당신의 눈이 똑바로 자신을 향하자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어지는 일련의 행위를 담담히 응시한다. 분명 당신이 입맞추는 손등은 제 것인데, 다른 사람 것인 것마냥 머나먼 시선이다.)
(처음 계약하던 순간에는 이보다 간지럽고, 강렬했던 것 같은데. 그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제 어깨에 이마를 기대는 당신을 한 팔로 끌어안고 부드럽게 등을 쓸어준다.)
아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의 따뜻한 온기가 몸에 쏟아집니다.
비로소 당신은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아프게 울려대던 머릿속이 차분히 가라앉고 고삐를 놓기 직전이었던 힘이 안정적으로 흐르는 것을 느낍니다.
미르딘이 당신의 몸을 쓸고, 피부가 접촉할 때마다 더 안정되어갑니다.
헤스터:... ...(밀려오는 온기를 감당하는 것에만 정신이 쏠려, 네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의식할 수조차 없었다. 자신을 도닥이는 부드러운 손길이 네 것이라는 것도 시간이 꽤 지나서야 알고 말았고...)
(꽤 안정이 되어서야 한 발 물러난다. 타인이라기엔 가깝고, 파트너라기엔 먼 거리감.)
미르딘:..다시 파트너가 되었네. (확연히 상태가 나아진 안색을 보고 별로 아쉽지도 않은 기색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임시겠지만, 잘 부탁해.
헤스터:(부러 시선을 피했다.) ...이제 가자, 기다리겠네.
미르딘:그래, 1층이지? (저벅저벅 앞서 나간다.)
헤스터:...(말 없이 따라간다.)